가이드 · 04

전이 금속: d 오비탈이 만드는 색과 촉매의 세계

주기율표 가운데 3~12족 전이 금속이 왜 여러 산화수를 가지고, 화합물이 다채로운 색을 띠며, 뛰어난 촉매가 되는지를 d 오비탈로 설명하고 철·구리·타이타늄·백금 같은 대표 원소와 몸속 미량 원소로서의 역할까지 소개한다.

주기율표 가운데의 넓은 구역, 3족부터 12족까지를 차지하는 원소들을 흔히 전이 금속이라 부른다. 철로 만든 다리, 구리 전선, 금반지, 타이타늄 인공관절까지 우리가 '금속' 하면 떠올리는 물질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원자의 d 오비탈이 채워지는 중이라는 것이다.

전이 금속의 정의

IUPAC은 전이 원소를 "원자 자체나 그 원자가 만드는 양이온에 불완전하게 채워진 d 부껍질이 있는 원소"로 정의한다. 이 정의를 엄격히 적용하면 12족의 아연·카드뮴·수은은 원자에서도 이온에서도 d 오비탈이 10개로 꽉 차 있어 전이 원소에서 빠진다. 그래서 교재에 따라 "d 블록 원소"와 "전이 금속"을 약간 다르게 쓰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3~12족 전체를 다루되 필요한 곳에서 이 차이를 짚는다.

전이 금속이라는 이름은 멘델레예프 시대에 주기율표 양쪽의 전형 원소 사이를 '이어 주는(전이하는)' 원소라는 뜻에서 붙었다.

d 오비탈이 채워지는 순서

4주기에서 전자는 먼저 4s 오비탈을 채운 뒤, 스칸듐부터 한 단계 안쪽 껍질인 3d 오비탈을 채워 나간다. 스칸듐의 전자 배치는 [Ar]3d¹4s², 철은 [Ar]3d⁶4s², 아연은 [Ar]3d¹⁰4s²이다. 5주기에서는 4d, 6주기와 7주기에서는 각각 5d와 6d가 채워진다.

d 오비탈은 5개이며 최대 10개의 전자를 담는다. 그래서 각 주기의 d 블록에는 원소가 10개씩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온이 될 때의 순서다. 전이 금속이 양이온이 될 때는 나중에 채워진 3d보다 바깥에 있는 4s 전자가 먼저 떨어져 나간다. 예를 들어 Fe²⁺는 [Ar]3d⁶이지 [Ar]3d⁴4s²가 아니다.

크로뮴([Ar]3d⁵4s¹)과 구리([Ar]3d¹⁰4s¹)처럼 예상과 다른 배치를 가진 원소도 있는데, 절반 또는 완전히 찬 d 부껍질이 에너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자세한 내용은 전자 배치 가이드에서 다룬다.

다양한 산화수

1족·2족 원소가 거의 항상 +1, +2 한 가지 산화수만 갖는 것과 달리, 전이 금속은 여러 산화수를 가진다. 4s와 3d 오비탈의 에너지가 비슷해서 상황에 따라 떼어 낼 수 있는 전자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망가니즈가 대표적이다. 망가니즈는 +2에서 +7까지 폭넓은 산화수를 보인다.

산화수특징
+2Mn²⁺ 염옅은 분홍색
+4MnO₂검은 갈색 고체, 건전지 재료
+7KMnO₄짙은 보라색, 강한 산화제

철도 +2(철(II))와 +3(철(III))을 오간다.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운반하는 과정과 녹이 스는 과정 모두 철의 산화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산화수를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질은 뒤에서 설명할 촉매 작용의 바탕이 된다.

착화합물과 색

전이 금속 이온은 물 분자, 암모니아, 염화 이온처럼 비공유 전자쌍을 가진 분자나 이온(리간드)에 둘러싸여 착화합물을 잘 만든다. 금속 이온은 전자쌍을 받아들이고 리간드는 전자쌍을 내어 주는 배위 결합이다. 스위스의 화학자 알프레트 베르너가 이 구조를 밝혀 1913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착화합물이 색을 띠는 이유는 d 오비탈의 에너지 분리에 있다. 고립된 원자에서는 5개의 d 오비탈 에너지가 같지만, 리간드에 둘러싸이면 리간드와의 방향 관계에 따라 에너지가 높은 무리와 낮은 무리로 갈라진다. 낮은 쪽의 전자가 가시광선의 일부를 흡수해 높은 쪽으로 옮겨 가면, 우리는 흡수되지 않고 남은 빛의 색, 곧 보색을 보게 된다.

  • 황산 구리(II) 수용액의 파란색: 구리 이온이 주황·빨강 계열의 빛을 흡수한다.
  • 루비의 빨간색: 산화 알루미늄 결정 속에 소량 들어 있는 크로뮴 이온 때문이다.
  • 에메랄드의 초록색: 역시 크로뮴(경우에 따라 바나듐) 이온이 원인이다.

같은 금속 이온이라도 리간드가 바뀌면 에너지 간격이 달라져 색이 변한다. 푸른 황산 구리 용액에 암모니아수를 넣으면 짙은 남색으로 바뀌는 것이 그 예다. 반대로 d 오비탈이 비어 있거나(Sc³⁺, Ti⁴⁺) 꽉 찬(Zn²⁺) 이온은 이런 전이가 일어나지 않아 대개 무색이다. 아연 화합물이 흰색인 이유다.

촉매로서의 전이 금속

화학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촉매 상당수가 전이 금속이나 그 화합물이다. 산화수를 바꿔 가며 전자를 주고받을 수 있고, 표면에 분자를 흡착해 결합을 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하버-보슈 공정. 이 공정으로 만든 비료가 세계 식량 생산을 떠받친다.
  • 바나듐: 산화 바나듐(V)은 황산 제조(접촉 공정)의 촉매다.
  • 니켈: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첨가해 마가린 등을 만드는 경화 반응.
  • 백금·팔라듐·로듐: 자동차 배기가스 촉매 변환기에서 일산화 탄소·탄화수소·질소 산화물을 덜 해로운 물질로 바꾼다.
  • 코발트·로듐: 유기 합성의 다양한 균일계 촉매.

생물도 전이 금속을 촉매로 쓴다. 효소의 활성 자리에 있는 철, 구리, 아연, 몰리브데넘 같은 원소가 호흡과 광합성, 질소 고정 같은 핵심 반응을 돕는다.

대표적인 전이 금속

  • 철(Fe): 지각에서 네 번째로 많은 원소이며 강철의 주성분. 인류 문명을 가장 크게 바꾼 금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구리(Cu): 은 다음으로 전기를 잘 통하는 금속. 전선과 전자 회로, 청동과 황동 합금에 쓰인다.
  • 타이타늄(Ti): 가볍고 강하며 부식에 강하다. 항공기 부품, 인공관절, 흰색 안료(이산화 타이타늄)에 쓰인다.
  • 크로뮴(Cr): 스테인리스강에 넣으면 표면에 얇은 산화막을 만들어 녹을 막는다. 크로뮴 도금의 광택으로도 익숙하다.
  • 니켈(Ni)·코발트(Co): 이차 전지의 양극재, 내열 합금, 자석.
  • 은(Ag)·금(Au)·백금(Pt): 귀금속. 금은 거의 부식되지 않아 장신구와 전자 부품의 접점에 쓰인다.
  • 텅스텐(W): 모든 금속 가운데 녹는점이 가장 높아 예전 백열전구 필라멘트와 절삭 공구에 쓰였다.
  • 수은(Hg): 상온에서 액체인 유일한 금속. 독성이 커서 온도계 등 많은 용도에서 퇴출되는 추세다.

자성과 물리적 성질

전이 금속 가운데 철·코발트·니켈은 상온에서 강자성을 띤다. 짝을 이루지 않은 d 전자의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이 금속은 밀도와 녹는점이 높고 단단한데, 금속 결합에 d 전자까지 참여하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오스뮴과 이리듐은 밀도가 가장 큰 원소들로, 한 변 10 cm 정육면체의 무게가 20 kg을 훌쩍 넘는다.

몸속의 전이 금속과 안전

사람의 몸에도 전이 금속이 꼭 필요하다. 철은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에서 산소를 붙잡고, 아연은 수백 가지 효소의 구조와 작용에 관여하며, 구리는 에너지 대사와 철 대사를 돕는다. 코발트는 비타민 B12의 중심 원자다. 이들은 아주 적은 양만 필요한 미량 원소로, 모자라도 문제가 되고 지나쳐도 해롭다.

반대로 카드뮴과 수은, 크로뮴(VI) 화합물처럼 적은 양으로도 건강과 환경에 해를 끼치는 전이 금속도 있다. 같은 크로뮴이라도 +3 상태는 비교적 해가 적지만 +6 상태의 화합물은 독성과 발암성이 알려져 있어 엄격히 관리된다. 산화수에 따라 성질이 크게 달라진다는 전이 금속의 특징이 안전 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다.

전이 금속은 주기율표에서 가장 많은 원소가 모인 구역인 만큼 성질도 다양하다. 주기율표에서 d 블록 원소를 하나씩 눌러 산화수와 녹는점, 밀도를 비교해 보면 같은 주기 안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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